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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불평등이 영화와 문학에 미친 영향, 스크린 위의 계급

by aurora007 2025. 4. 8.

영화와 문학은 경제적 불평등을 어떻게 말해왔을까? 계급 간 긴장과 욕망, 침묵된 현실을 비추는 창으로서의 예술을 들여다본다.

 

경제적 불평등이 영화와 문학에 미친 영향, 스크린 위의 계급

1. 스크린 위의 계급: 불평등을 직시하는 현대 영화의 시선

현대 영화는 더 이상 판타지와 영웅 서사만을 다루지 않는다. 오늘날 가장 날카롭고 강력한 서사 중 하나는 바로 '불평등'이다. 계급 격차와 빈부의 간극은 서사의 핵심 갈등으로 활용되며,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영화의 주제 그 자체가 된다. 2019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그 대표적인 예다. 영화는 단지 부잣집과 가난한 가족의 만남을 다룬 것이 아니라, 공간과 냄새, 시선과 무언의 감정들을 통해 계급 사이의 분리와 충돌을 은유적으로 직조해 냈다. 반지하의 삶과 언덕 위 저택의 대비, 폭우에 대응하는 방식의 차이 등은 시각적 상징이자 계급 간 현실의 직접적 묘사였다.

비단 『기생충』만이 아니다. 이창동의 『버닝』,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 루벤 외스틀룬드의 『포스 마쥬어』, 『슬픔의 삼각형』 등 수많은 현대 영화들이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발생한 사회의 불균형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 영화들은 ‘대변되지 못한 자’들의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낸 개인의 무력함과 위계의 억압을 조명한다. 이러한 경향은 단지 예술의 소재를 찾는 차원이 아니라, 스크린이 사회의 ‘거울’ 역할을 한다는 전통적인 기능의 회복이라 볼 수 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불평등을 단순히 고발하거나 묘사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 감정적 여운을 관객에게 철저히 공유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감정 이입의 설계는 영화의 강력한 무기다. 누군가는 ‘그들’의 삶을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고, 누군가는 자신의 현실을 극장에서 재확인하게 된다. 영화는 경제적 불평등을 외면할 수 없도록 만든다. 그런 면에서 현대 영화는 ‘감정적 사회학’의 장이라 할 수 있으며, 불평등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감각적으로 해석하고 대중화하는 데 있어 가장 선두에 서 있다.

2. 문학 속의 틈: 서사로 드러난 계급과 침묵의 목소리

경제적 불평등은 문학의 오랜 주제였다. 특히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의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자본과 노동, 귀족과 농민, 도시와 시골의 간극은 수많은 작가들의 글에 깊이 침투했다. 한국 문학 역시 예외가 아니다. 1930년대 프로문학의 흐름에서부터 1980년대 리얼리즘 계열 작가들까지, 가난과 노동, 계급적 좌절은 반복되는 핵심 모티프로 존재해 왔다. 이들은 경제 구조 속에서 억눌리는 개인의 삶을 파고들며, 단순한 배경 묘사가 아닌 사회 구조의 비판으로 나아갔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나 김애란의 단편들처럼 현대문학에서도 불평등은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된다. 과거에는 구조적인 억압에 집중했다면, 현대 문학은 그로 인한 감정의 층위, 개인의 내면 풍경에 주목한다. ‘왜 나는 이토록 위축되어 살아야 하는가’, ‘노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벽은 어디서 오는가’에 대한 질문이 문장 사이사이에 자리 잡는다. 이것은 단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만이 아니라, 그 체제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고통을 직시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문학은 불평등을 다룰 때 종종 ‘침묵된 목소리’를 중심에 둔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통, 들려주지 못한 기억들, 그리고 묻혀 있던 서사를 발굴한다. 이를 통해 문학은 기록되지 못한 세계를 문장으로 되살리고, 역사적 진실의 균형을 바로잡는다. 이는 단지 문학이 사회적 기능을 갖기 때문이 아니라, 문학이 인간 내면의 정직한 반응을 다루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구조적 억압은 결국 개인의 감정, 관계, 정체성에까지 깊이 침투하며 문학적 사유의 대상이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문학이 독자를 ‘응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문제로서 불평등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가까운 일인지, 우리 모두가 그 구조 속에 놓여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 문학은 그저 슬픈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는 거울을 독자에게 들이댄다.

3. 예술의 탄식, 혹은 반격: 불평등 시대의 창작 동력

경제적 불평등이 영화와 문학에 미친 영향은 단순히 주제를 바꿔 놓은 것이 아니라, 창작 자체의 동기와 방향을 변화시켰다. 과거에는 계급이 예술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계층의 영역이었다면, 이제 예술은 계급 구조를 정면으로 겨누는 무기가 되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현실을 회피하지 않는 예술’이라는 태도가 자리 잡고 있다. 작가와 감독, 창작자들은 이제 ‘불편함을 피하지 않기’를 선택하며, 관객과 독자에게 ‘세상의 모순을 감각하라’고 외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탄생한 예술은 종종 충격적이며, 때로는 파괴적이기까지 하다. 이는 기존의 미학이나 서사 구조를 뒤흔들고, 새로운 표현 형식과 감정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파편적 서사, 다큐멘터리적 구성, 비선형 구조 등은 모두 불평등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혹은 ‘다르게’ 보여주려는 시도다. 현실을 미화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현실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예술은 불평등을 직면한다. 그렇다고 예술이 언제나 직접적인 정치적 언어만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은유, 상징, 불안정한 이미지들을 통해 현실의 깊은 균열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불평등은 단지 숫자나 통계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거리의 냄새, 계단의 경사, 시선의 높낮이, 혹은 말을 삼키는 주인공의 침묵에서 감지된다. 이처럼 감각의 언어로 구조를 말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 불평등을 다루는 가장 정교한 방식이기도 하다. 예술은 시대를 반영하면서 동시에 시대를 거스른다.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조건은 예술을 침묵하게도 만들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이 창작의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오늘날 많은 창작자들은 그 모순을 껴안으며 말한다. “우리는 불평등 속에서도 계속 기록하고, 말하고, 노래하겠다.” 이것이 바로 예술이 불평등 시대에 남기는 가장 단단한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