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밍 플랫폼의 등장 이후 영화 산업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제작, 소비, 극장과 창작 방식까지 달라진 생태계를 살펴봅니다.
1. 극장의 위기, 거실이 된 영화관
한때 영화 관람은 특별한 외출이자 문화행사였습니다. 주말이면 극장에 나가 팝콘을 사고, 큰 스크린 앞에 앉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시작을 기다리던 시간이 모두에게 존재했죠. 그러나 스트리밍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되면서 이 풍경은 급격히 바뀌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극장이 아닌 거실에서 영화를 봅니다. 대형 TV와 사운드 시스템이 있는 집이라면 그 경험은 더욱 몰입감 있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넷플릭스나 디즈니+, 왓챠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는 극장 개봉과 거의 동시에 혹은 그보다 빠르게 콘텐츠를 공개하면서 관객의 선택지를 확 넓혀주었습니다. 그 결과, 중소형 영화관들은 관객 수 감소에 직면했고, 대형 멀티플렉스조차 신작 영화 부족 현상에 허덕이게 됐습니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시간과 장소의 한계를 제거했지만, 동시에 영화관 고유의 집단적 몰입 경험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이 흐름에 가속도를 붙이며, 사람들은 '굳이 극장에 가야 할 이유'를 잃어버렸습니다. 이제는 영화 자체보다 시청 환경의 편의성이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죠.
2. 제작 방식의 변화, 알고리즘이 선택한 이야기들
스트리밍 플랫폼은 단순한 콘텐츠 유통 채널이 아니라, 이제는 직접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통까지 책임지는 종합 미디어 기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영화의 제작 방식 역시 큰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기존 영화 산업은 감독의 창의성과 작가의 서사력이 중심이 되었다면, 스트리밍 오리지널 콘텐츠는 데이터 중심의 기획이 주를 이룹니다. 어떤 장르가 인기 있는지, 어떤 배우가 시청률을 끌어올리는지, 어떤 시간대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는지를 수치로 분석한 뒤 그에 맞는 스토리를 제작합니다. 이는 기존 영화 산업이 놓치던 다양한 목소리를 수면 위로 올리는 데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비백인, 여성, 성소수자 중심의 이야기들이 스트리밍 플랫폼에서는 더 자주 등장하며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면, 너무 많은 콘텐츠가 양산되며 개성과 실험 정신이 약해진다는 비판도 존재합니다. 알고리즘은 흥행할 이야기만 반복하게 만들고, 시청률 높은 포맷만 재생산하게 되는 부작용도 피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제작의 중심이 ‘창작자’에서 ‘플랫폼과 데이터’로 옮겨가고 있는 셈이죠.
3. 영화의 수명 주기 단축, 히트는 짧고 빠르게
기존 영화 산업에서는 한 편의 영화가 개봉 전부터 티저, 예고편, 시사회, 극장 상영, 그리고 나중에야 DVD나 방송으로 이어지는 비교적 긴 생명 주기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스트리밍 플랫폼의 세계에서는 이 구조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콘텐츠는 공개되자마자 전 세계 수억 명의 사용자에게 동시에 전달되며, 단 며칠 만에 '다 봤다'는 반응이 쏟아집니다. 이에 따라 흥행의 속도도 빨라졌지만, 잊히는 속도도 그만큼 빨라졌습니다. 이른바 ‘다음 화 기다림’의 문화는 점점 사라지고, 사람들은 한 시즌 전체를 몰아보며 순식간에 소비해 버리는 방식을 택합니다. 이는 영화 산업 전반에 '빠르게 제작하고, 빠르게 흥행시키고, 빠르게 잊히는' 구조를 만들게 되었고, 콘텐츠의 품질보다 타이밍이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습니다. 마케팅도 SNS 바이럴 중심으로 바뀌었고, 티저 영상 하나로 전 세계에 입소문을 퍼뜨리는 전략이 일반화됐습니다. 수명 주기의 단축은 제작사에게는 부담을, 소비자에게는 피로감을 안겨주며, 콘텐츠 과잉시대의 폐해를 가속화시키고 있습니다.
4. 다양성의 확대 또는 양극화의 심화
스트리밍 서비스의 또 다른 주요 영향은 ‘다양성의 확대’입니다. 한국 영화가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지고, 인도, 나이지리아, 스페인 같은 국가의 로컬 콘텐츠가 전 세계 시청자에게 사랑받는 시대입니다. 언어와 국적을 뛰어넘는 콘텐츠의 유통은 스트리밍 시대에 가능해진 혁신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 안에도 양면성이 존재합니다. 플랫폼에 선택받은 일부 콘텐츠는 글로벌한 주목을 받지만, 그렇지 못한 수많은 영화들은 서랍 속에서 사라집니다. 선택받지 못한 콘텐츠는 추천 알고리즘에 노출되지 않기에 사실상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한 대형 플랫폼들이 자체 제작 콘텐츠를 확대하면서, 독립영화나 예술영화 같은 비주류 장르의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다양성이 확대되었지만, 동시에 ‘알려진 것만 더 알려지는’ 구조 속에서 대중은 점점 익숙한 콘텐츠만 소비하게 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결국 다양성은 표면적으로 확대되었지만, 콘텐츠 간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된 상황입니다. 알고리즘이 보지 않는 영화는, 이제 사람도 보지 않게 되는 시대입니다.